일상의 관심

복지애환

송파나루 2013. 3. 25. 12:55

글쓴이 심재*

작성일 : 2012. 3. 23

내용 : 

이 글이 일선에서 복지업무를 담당하고 계신 직원들께서 힘을 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또 다른 직원들은 복지담당직원들의 어려움을 살펴보고 함께하시길을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같은 식구들이기 때문입니다.
복지직원들의 아픔들
그 아픔을 함께합니다

 

福祉哀歡

 

최근

3분 사회복지공무원들의 연이은 비보를 접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또 다른 복지공무원들이 험한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복지부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얼마동안만 근무하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사회복지직은 평생을 근무해야 한다는 앙다문 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공무원이 퇴근을 합니다.

오늘은 별 약속도 없어 집에 일찍 왔습니다. 마누라는 일찍 퇴근했다며 좋아합니다.

함께 시장을 가자고 합니다. 시장을 보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집에 와서도 아이들과 이것을 묻기도 하고 저것을 듣기도 합니다.

이번 토요일 어디를 놀러가자고 약속도 합니다. 식구들이 다 좋아합니다.

행복? 뭐 별거 아닙니다.


복지담당 공무원이 퇴근을 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잠이 들어 있습니다. 저녁은 제대로 챙겨먹었는지 걱정이 됩니다.

보아하니 씻지도 않은 듯합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지, 학원은 잘 다니고는 있는지, 요즘은 어떤 친구와 어울리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곤하게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울 수가 없습니다.

남편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늦게 오는 것이 만성이 되어서인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별 말없이 TV만 보고 있습니다.

피곤합니다. 대충대충 씻고 남편 옆에 앉아 TV를 보고 있습니다.

TV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저 멍 합니다. 피곤합니다.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살까? 잠시 생각하다가 어느새 잠이 듭니다.


○○○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화재에 취약한 수급자 일부에게 소화기를 주겠으니 대상자를 선발 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수급자 전부라면 행복e음(사회복지통합전산망=사통망)에서 전체 명단을 쫙 뽑아 주면 간단한 건데 일부만 주겠다고 하니 할 수 없이 동 주민센터 복지담당에게 공문을 보내야 합니다. 제출 날짜까지 정해서 공문을 보내서 명단을 제출받아 작업하여야 합니다. ○○○은 사업실적으로 빛이 나고, 복지직은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냐는 민원전화만 오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어린아이가 범죄로부터 노출되어 불행한 일을 겪었습니다.

행안부에서 복지부로 복지부는 서울시로 서울시는 구청으로 공문이 시달되었습니다. 저소득 초등학생에게 긴급 시 연락할 수 있는 U안심서비스(SOS단말기제공)를 제공하니 대상자 명단을 제출하라고 합니다. 필요경비는 KT에서 댄다고 합니다. 동 주민센터에 공문을 보냅니다. 동 복지담당은 수급자 명단 중 초등학생 가정에 일일이 전화를 하여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물어 명단을 작성하여 구청에 제출합니다. 대상자 가정에 공문을 만들어 보낼 시간도 없고 공문을 보내봐야 실효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KT는 저소득층 시혜사업으로 빛이 나고, 동 복지직은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여 침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20일, 수급자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지급하는 날입니다.

며칠 전부터 호흡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계좌번호는 맞는지, 그간 사망자는 없는지, 계좌번호를 바꾸고도 신고는 했는지, 신규 수급자가 누락되지는 않았는지, 탈락된 수급자가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압류된 계좌인지 아닌지 챙겨볼게 하나 둘이 아닙니다. 엑셀로 출력하여 꼼꼼히 살펴보고 틀린 것은 정정입력하고 또 다시 출력하여 살피기를 여러 차례 거듭합니다. 눈이 침침합니다. 드디어 결재를 올립니다. 별 탈 없이 돈이 잘 들어가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20일은 수 없이 민원전화가 올 것을 각오하고 있지만 그래도 일단 한고비를 넘겼습니다. 20일이 지나 입금이 안 된 가구를 추출하여 또 다시 작업에 돌입합니다. 이 번 달은 대상이 50여 가구라 참 다행입니다.


따뜻한 겨울 보내기 성금 모금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계장은 일단 계획부터 수립하라고 합니다. 공무원은 일단 계획서 만들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얼마나 빨리 목표액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계획서가 그렇게 중요할까? 의문과 함께 구청에서 시달된 계획서와 작년의 계획서를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사실 따겨 성금모금은 동장님이 더 관심이 있어 거의 동장님이 다 모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나라고 해서 노는 것은 아닙니다. 후원된 쌀이며 라면 그리고 성금을 골고루 나누어 주려면 우선순위에 따라 잘 지급해야 합니다. 후원된 쌀이며 라면을 3층 회의실까지 짊어 올리려면 남자직원들의 신세를 져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눈치도 잘 봐둬야 합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전달식 사진 찍은 다음에 병약한 어르신은 집에까지 배달도 해 줘야 합니다. 누군 주고 누군 안준다고 민원만 없으면 다행입니다.


10월 경노의 달이라 어르신 잔치를 합니다.

옛날에는 어르신 모셔 국밥에 떡 막걸리면 되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경비가 구청으로부터 충분히 내려오지도 않습니다. 동장님도 나름대로 경비 때문에 걱정이 많으신 모양이나 내가 돈에 대해서는 도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벤트를 준비해야 합니다. 돈 만 된다면 국악인과 밴드 부르면 간단한데 유치원 꼬마들을 부를까? 연구해 봅니다. 주민자치 총무를 만나 이런 저런 의논을 해 봐야겠습니다. 행사당일 쓸 식탁이며 접의자 기타 집기류를 빌려야 합니다. 또 남자직원들에게 부탁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잘 해 둬야합니다. 공익이 말을 잘 들어야 할 텐데 걱정이 많습니다. 행사 당일 술에 취한 어르신 한분이라도 넘어져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침 일찍 허름한 옷차림의 아저씨가 벌써 와 계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찾아온 주민입니다. 컴퓨터를 켜고 업무준비를 하기도 전에 상담을 시작합니다. 아파서 병원을 가야하니 빨리 수급자로 만들어 달라는 내용입니다. 일단은 들어 줘야합니다. 그리고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신청서를 작성이며 일련의 과정까지 자세히 알려줍니다. 그러나 납득하지 못합니다.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아침부터 진땀을 빼기 시작합니다. 어찌 어찌 해서 겨우 보냈습니다. 가정 사정이나 형편을 들어보니 수급자로 책정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나 그런 얘기마저 했다가는 맞아 죽을 것 같습니다. 고단한 하루의 시작입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찍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1~20분 정도 인근 공원을 돌고 왔으면 좋으련만 혹시 누가 와서 기다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새로 온 신규직원도 맹탕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께서 노기 띤 얼굴로 앉아 계시고 신규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무슨 서류를 휙 집어던지며 냅다 소리 지르기 시작합니다. 반말은 기본이고 욕설은 보너스 협박은 옵션입니다. 서류를 살펴봅니다. 소득인정액이 초과되어 수급자를 탈락시킨다는 구청에서 보낸 안내장입니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컴퓨터를 보며 그 사유를 살펴봅니다. 부양의무자인 출가한 자녀의 소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설명합니다. 듣지도 않고 고함입니다. 뒷자리를 쳐다보니 계장이 나서 줍니다. 계장이 데리고 가 옆자리에 앉도록 합니다. 얼른 차 한 잔을 타서 드립니다. 다행이 큰소리가 잦아지더니 조금 지나자 조용 해 졌습니다. 민원인은 나이 든 남자직원와 나이 어린 여직원을 구분해서 대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전화통에 불이 납니다.

손자 돌보는 할머니에게 40만원을 준다는 아침 TV 뉴스를 보고 출근했는데 그것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는 일이라 시원하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실망스런 주민의 빈정대는 말을 여러 번 더 들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또 다른 모습의 복지가 우리를 더 어렵게 할 것입니다.


벌써 한 시간째 어르신과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나도 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한방에 알아들을 수 있는 비결은 없는지 안타깝습니다. 다른 직원들이 상대하는 민원인은 간단한 대답으로서 끝나지만 내가 상대하는 민원인은 그런 적이 별로 없습니다. 다른 직원들이 상대하는 민원인은 가끔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내가 상대하는 민원인은 늘 화난 얼굴들과 안타까운 얼굴들뿐입니다. 어쩌다 젊은 주부와 상담할 때면 머리털이 서기도 합니다. 기분이라도 조금 상했다고 느껴지면 인터넷에 가차 없이 불친절한 공무원으로 매도시켜 버립니다. 특별이 불친절한 행위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 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뒷일 감당이 어렵습니다.


의회가 열립니다.

서무주임이 이번 의회는 업무추진실적 보고이니 빨리 달라고 거품을 물고 있습니다. 계장은 숫자가 틀린 것은 용서가 없다고 공갈입니다. 대상 가구며 대상자 등 기본적인 현황부터 시작하여 지급 금액까지 꼼꼼하게 살펴야 합니다. 중간 중간에 간주처리된 것이 빠지면 큰일 납니다. 분명히 지급했는데 계좌번호가 틀려 미지급된 것이 포함되었는지 정확해야 합니다. 겨우 작성한 자료를 보더니 계장은 내용부터 묻고는 글씨체며 간격 크기까지 지적합니다. 고치기를 여러 번 거듭합니다. 뭐 의화자료 뿐만이 아닙니다. 이 부서 저 부서에서 무슨 자료 요구하는 게 그렇게 많은지 계주임은 자료작성에 세월 다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 공기가 안 좋습니다.

계장과 과장이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웬일인지 저녁까지 산다고 합니다.

이야기인 즉은 “그간 간부회의 자료에 제출할 것이 너무 없었으니 남들이 보면 우리 과는 노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이러저러한 일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밥맛도 없고 걱정이 되어 가슴이 먹먹합니다.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교육 내용은 좋은 듯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밀릴 일을 생각하면 교육도 달갑지 않습니다. 서무주임은 우리부서에 할당된 부분이 있으니 강제로 차출한다고 으름장입니다. 우리 조직은 교육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열등한 존재인가? 우울합니다.


사무실이 조용합니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났기 때문입니다. 서무주임과 나 단둘이 있습니다. 오늘은 서무주임이라도 있어 다행이지 혼자 남아있는 날은 무섭습니다. 나는 서글프게도 이 시간이 좋습니다. 전화도 없고 민원인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할 일은 낮에 상담했던 몇 분의 복명서를 작성하는 일과 엑셀작업이 있습니다. 어떻게 태어났고 공부는 어디까지 했으며 누구와 결혼과 이혼을 했으며 등 상담하면서 메모했던 노트를 뒤적입니다. 최소한 A4용지 반을 채워야 합니다. 즐겁고 희망찬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팍팍하게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의 가정사입니다. 나도 덩달아 우울 해 집니다.


아이를 업은 허름한 차림의 아주머니가 내 앞에 왔습니다.

민원인은 아닌 것 같은데 쭈빗쭈빗하며 검은 비닐봉지를 슬며시 나에게 줍니다. 열어보니 오렌지 팩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나는 “아!”하고 탄성이 나옵니다. 몇 달 전 담당 통장님이 갑자기 어려운 가정이 생겼다고 하여 부녀회장님께 말씀드려 김치 한통과 따겨 때 후원된 쌀 한포를 가지고 찾아가 드린 적이 있는 가정의 아주머니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쌀을 한 번 더 드린 적이 있었지만 바쁜 일 때문에 ‘자주 가봐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는 잊어버렸습니다. 찾아 뵐 당시 단칸방에 어린 아이들이 세 명이었으며 남편 분은 등을 돌리고 앉아 나와 통장님 등을 돌아보지도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었습니다. 오늘 찾아온 아주머니의 말씀은 그동안 남편이 허리를 다쳐 일을 못하다가 많이 호전되어 버스회사 운전사로 취직해서 이사를 가게 되었으며 그 동안 복지담당의 배려가 참으로 고마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고맙다고 내민 오렌지 주스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주 살펴보지 못한 안타까움과 일부러 찾아 준 고마움에 마음이 짠합니다.


남쪽에는 매화꽃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꽃구경한지가 언제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